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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by J_One. 2023. 5. 4.

 
벌써 5월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4월은 무지 바빴다. 3월 말에 대회가 끝나며 그동안 미루고, 사양했던 저녁 식사 및 술자리를 의도적으로 찾았는데 그 때문인지 몸은 더 피곤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즐거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수면 시간은 최저점을 향해 수렴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또 하나 특별했던(?) 것이 있다면, 4월은 통근 시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4월은 목표한 운동량은 초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아니 사실 '운동량'을 채우는 것을 지상과제로 스케줄링을 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4월의 러닝 목표는 150K였다. 3월 서울 동아마라톤 대회 10일 전 찾아온 햄스트링 이슈가 대회 당일날 더 심해지며, 대회 이후 3월에는 아예 러닝은 하지 않았다가 4월 1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한 달이 30일이니 대략 이틀에 한 번 10K씩 뛰면 달성할 수 있는 수치였다. 미세먼지 농도가 천정부지로 솟던 셋째 주에는 공백기가 좀 있었지만 중간중간 하프 마라톤 거리와 15K를 뛰었기에 넷째 주 주중에 목표량을 달성할 수 있었고, 4월 30일에 하프 거리를 뛰며 총거리는 200K를 넘어갔다.
 
웨이트와 맨몸 운동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완전히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올해 여름에 장애물 레이스 중 하나인 '스파르탄 레이스'에 팀을 꾸려 참가해보려고 시도 중이다. 친구 중 하나가 '거기서는 솔직히 상탈하고 뛰어야지'헤서, 또 어차피 여름도 다가오고 있기에 닭가슴살 열심히 먹으면서 만들어보는 중이다.
 

 
4월 러닝의 모토는 '페이스는 신경 쓰지 않고 회복하면서 마일리지만 쌓자'였다. 상술했듯, 최장거리도 하프 거리로 설정해 30K 이상의 LSD는 일정 수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러닝 주간에서 기록주나 속도주는 넣지 않고 편한 이븐 페이스에서 즐기며 러닝을 했다.
 
나름 특별한 에피소드는 딱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4월 초에 정자교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인명 피해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하프 거리 러닝을 나가는데 중간에 꽤 긴 구간이 통제 중이라 주로에서 벗어나 한참 걷다가 다시 주로로 돌아올 수 있었다.
 
페이스에 신경을 써서 뛴 것은 월말에 한 번, 군대에서 하던 3K를 측정해봤다. 대단히 준비하고 뛰진 않았지만 평균 페이스 3'43"에 시간은 11:04-혼자 측정해서 완료 버튼을 늦게 눌렀는데, 3K 넘는 순간 찍힌 시간은 이게 맞다-였다. 
 
현역병 시절에는 12:30가 특급 기준이었고, 지금은 나이가 차서 기준이 더 완화됐겠지만 체력 측정하면 웬만한 현역들은 다 제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내 훈련병 시절에는 10분 52초까지 나왔었는데,, 이게 훈련을 해도 나이를 못 속이는 것인지, 아니면 훈련병 시절의 강제 금연 효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아주 면밀히 계획을 세워서 마음을 다잡고 연습을 했는데'라는 석연치 않은 기분이 남았다. 우울한 구름 조각이 위장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어떻게 경련 같은 것에 당해버린 것일까? 

모든 노력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라는 것을 새삼 강조할 마음은 물론 아니지만, 만약 하늘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 징표를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그 정도의 친절함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224.

 
마라톤 기록증과 완주 기념 바람막이는 4월 중 배송이 왔다. '3:13:04'. 아쉬움이 들러붙은 숫자가 또렷한 검은 잉크로 새겨졌다.
 
그런 생각을 한다. '32K 지점에서 햄스트링이 말썽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끝낼 수 있었는데' 혹은 '부상 후에 그냥 미친척하고 3분만 당겼어도 싱글은 달성하는 거였는데' 같은 것들.
 
안다. 전자는 성립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또 후자는 몸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무모한 행동임을. 
 
하지만 내가 아쉬운 것은 그 날의 42.195가 아니다. 마라톤이란 그런 것이다. 대회 당일의 42.195k를 뛰고 들어온 결승점이 아니라, 그날의 출발점에 서기까지의 거리에서 흘린 땀과 뛰었던 모든 거리가 핵심이다.
 
잠을 줄이며 훈련 시간을 확보했고, 한파가 닥친 겨울에도 나가서 뛰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카페인을 목구멍에 부어 넣으면서. 그런데 그깟 '부상'으로 이렇게 엉거질 줄은.
 
'작가는 느꼈지만 형언하지 못하는 감정을 기록해둔다'.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김영하 작가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방송에서 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 생일 선물로 받았던 하루키의 에세이를 다시 읽으며 김영하 작가의 주장에 깊이 감화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다음주 화요일인 5월 9일 (화), 올해 11월에 있을 JTBC 마라톤 풀코스에 재도전을 결심했다. 
 
그래서 하루키의 에세이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또 마지막 챕터의 제목인 이 문장을 다시 한번 꾹꾹 눌러 읽게 된다.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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