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없이 각인된 정류장 표지판
그 밑에 전광판은 ’대기‘를 밝힌 채
점멸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듯
걑은 글자를 성실히 밝히고 있었다
S가 있는 병원은 지난가을, 이곳에서 술을 먹고
도저히 귀가할 자신이 없어 묵었던 호텔 옆이었다
우리는 그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운전자를 탓하면
비타민 음료를 들이켰고, 맑은 밤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코로나로 병원에서 정식 면회는 불가능해
우리는 대로 옆, 흡연구역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어느덧 이곳 지리를 꾀게 된 나는, 모텔촌 뒤편으로
낮은,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주택가를 지나
취기를 나누는 대학 동기 무리들과
짝짓기 장소를 정하는 연인들 사이를 지나쳤다
골목에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가 부유하고
이따금씩 종횡으로 난 번화가의 길이 등장한다
월요일 밤, 취기가 진동하는 젊은 사람들 머리 위에
배합 따위 개의치 않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빛나고
사람들로 가득 찬 건대 입구 번화가의 거리를
양팔을 크게 펼친, 노인 한 분이 리어카로 가른다
이 거리 중 어디 담벼락에, 객기 어린 우리가
독한 담배 연기로 그을렸던 흔적이 남아있을까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했던 너는
어느덧 사람을 찾아 함께 생활을 꾸려가고
여전히 뭔가에 홀린 듯 살아가는 나는
아직도 시간을 꾸며 하루를 지어내는데
과연 우리는 어디서, 얼마나 왔을까
어디까지,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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