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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왜 뛰는걸까?

by J_One. 2023. 10. 29.
2023 스파르탄 레이스 삼척 비스트

 
 지난주 토요일, 2023 마지막 대회가 끝났다. 군 복무 시절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스파르탄 레이스. 그것도 가장 길고 힘들다는 21K 비스트 종목에 참가해 무사히 완주하고 왔다.
 
 본래 우리 팀원은 4명이었다. 그런데 팀원 중 한 명이 훈련 중 무릎 부상으로 빠지고, 다른 한 명은 대회가 있는 주 월요일로 잡히며 운동이 불가해졌다. 결국 D와 둘이 다녀왔고, 재밌게 즐겼다.
 

 
 마라톤, 트레일 러닝인 산악 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경험이 있었지만 스파르탄 레이스는 확실히 또 다른 종류의 레이스였다. 기본적으로는 해변과 산악 지형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체력을 빼고, 전완을 털어 버리는 장애물들이 함께한다. 
 
 또 해변에서 트레일 러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발이 쑥쑥 빠지는 해수욕장의 모래들은 신발 속에 틈입해 피로를 더한다. 그대로 바닷물을 뚫고 지나가는데 이 날 신은 신발은 대회가 끝나고 모두 보내줘야 했다. 
 
 항상 버리고 싶어하는 내 습관-아니면 징크스, 아니면 뭐 그 비스무리한 거-중 하나가 중요한 날 전날에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이다. 이날도 거의 2시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대회 장소인 삼척 맹방해수욕장까지 내가 운전해야했다는 것. 4시 30분쯤 기상해 짐을 차량으로 옮긴 후 5시 30분쯤 이동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거진 4시간을 운전하고 바로 대회를 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은 수면 시간 + 장거리 운전으로 대회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그만큼 더 값진 경험이었다. 특히 날씨와 경치가 너무 좋아서 뛰고, 오르고, 내리고, 옮기는 힘든 대회였음에도-그래서 끝나고 완전히 체력이 방전됐음에도-아직도 대회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기분이다.
 

 
 이번 스파르탄 레이스 완주 메달까지 해서 총 12개의 메달을 모았다. 이제는 내 방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둔 '간이 진열장'에 공간이 없다. 내년 동마가 끝나면 제대로 된 진열장을 하나 구입해 전시를 할까 생각 중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대회는 꾸준히 나가겠지만 기록 경쟁이 아닌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고자 한다.
 

 
 스파르탄 레이스 준비겸, 추석 연휴 전후로 2023 마지막 LSD 훈련을 진행했다. 연휴를 앞둔 주말에는 일반 31K를, 연후를 낀 주말에는 배낭 중량을 10kg 정도로 맞춰서 중량 LSD를 진행했다. 이 날 훈련을 마치니, 올해 대회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이날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GPS가 튀었다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을 다녀왔다. GPS가 가볍게 튀는 경우는 있었지만 해외여행을 보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덕분에 연휴가 끝나고 '이번 연휴에 일본 다녀왔다'라며 너스레를 떨고 다닐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올해는 LSD를 꽤 많이 했다. 나는 항상 탄천 - 잠실 구간을 기준으로 LSD 거리를 짠다. 집에서 시작해 정자 - 서현을 지나 서울에 진입하면 송파 - 양재 - 잠실이 나온다. 3월 동마를 준비할 때는 거기서 동쪽으로 더 이동해 50K까지 채우기도 했지만, 스파르탄 레이스는 그만큼의 장거리는 필요 없고 무엇보다 기록 경쟁이 아닌 단순 완주 목적이었기에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훈련을 진행했다. 
 

 
 하계에는 우중런, 우중 LSD도 여러 차례 진행했었다. 이 시기에는 동마에서 섭3 달성 실패에 대한 오기(?)로 열심히 뛰어다녔던 것 같다. 커다란 배낭 메고, 짧은 러닝용 쇼츠에 비를 다 맞으면서 뛰는 내 모습을 보며 가끔씩 라이더분들이나 다른 러너분들이 응원을 해주시기도 했다. 
 
 이 탄천 - 잠실 LSD 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성낭 비행장 근처 코스다. 비행장이 있다보니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한동안 경치가 변하지 않아 지루하고 거리도 줄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구간만 지나면 송파에 도착하기에 '서울로 진입했다'라는 심리가 작용해 좀 수월해진다.
 
 긴 성낭 비행장 코스가 끝나면 내가 쉬는 히든 스팟(?)이 있다. 특히 우중 LSD를 하면 상의가 비에 젖어 너무 무거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이 교량 밑으로 잠깐 몸을 피하고 상의를 탈의한 채로 빗물을 짜준 후 말린다. 우중 LSD에는 항상 전신 타월을 가져가 체온을 유지해주기까지 한다. 아니면 바로 몸살 직행일 거다.
 

 
 스파르탄 레이스의 장애물들이 상체 근력을 많이 요구하는 만큼, 근력 운동 비중도 많이 늘렸다. 웨이트도 웨이트지만 풀업과 딥스 같은 맨몸 운동도 꾸준히, 강도 높게 진행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회날 컨디션만 더 좋았더라면 외줄도 한 번에 타고, 좀 더 멋지게 장애물 극복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좀 남는다.
 

 
 하계부터 열심히 했던 또 다른 훈련은 트레일 러닝, 바롯 뒷산인 광교산에서 많이 준비했다. 트레일 러닝 훈련에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걷지 않는 것'. CP이자 반환점인 정상 시루봉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페이스가 느리더라도 무조건 발을 구르는 게 목포였다.
 
 종아리, 허벅지, 족저근 어디 하나 자극이 오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렇게 꾹 참고 업힐과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에서의 멋진 풍경이 항상 나를 기다린다. 하계에는 특히 일출 시간 직전에 입산해 훈련했는데, 해가 뜨면서 더위가 오르는 게 싫어서라도 빨리 올라가야 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올해 마지막 트레일 러닝을 다녀왔다. 날이 좋아서인지 하계보다 페이스도 좋았고, 그동안 훈련을 보람인지 훨씬 수월하게 뛰어 올라갔다. 
 
 이날 폰을 바꿨는데, 페이스 상승과 휴대폰 변경으로 인한 '들뜸' 때문인지 하산을 우리 동네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해버렸다. 본래 다운힐에서는 신나게 뛰어내려 가야 기록이 단축되고, 그렇기에 발 착지에 집중하느라 가끔씩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잘못 들어선 길의 다운힐 코스가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좋아 즐겁게 훈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본래 일정에는 돌아오는 주말에 JTBC 마라톤 참가가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파르탄 레이스 참가 신청 직후 제마를 취소해 버렸다. 
 
 일정도 너무 바빴고, 스파르탄 레이스를 위해 근력 운동과 증량을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제마를 동시에 준비한다면 완주는 충분히 하겠지만 기록 경신은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취소를 결정한 시점에 이미 내년 3월 동마 얼리버드 신청을 해뒀었기에 '한 번에 하나씩에만 집중하자'라는 생각으로 재고 없이 대회 포기를 선택했다.
 

 
 사실 JTBC 마라톤 출전을 결정했던 것은 3월 대회의 결과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훈련했고,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잠이 부족해도 나 스스로 약속했던 훈련 스케줄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대회가 끝나고 그 아쉬움을 달래준 것은 올해 생일 선물로 받았던 에세이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작가란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문장으로 대신 표현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하루키의 수필에 담긴 활자들에 내 아쉬운 감정들이 스며들었다.
 
 그러다 오늘, 인스타 피드를 내리다가 션님의 포스트를 봤다. 서브3 달성에 실패했다는 내용이었고, 오른쪽 햄스트링에 문제가, 그것도 32K 지점에서 터졌다는 것이었다.
 
 역시 신기했다. 나도 오른쪽 햄스트링이, 32K 지점쯤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런데 너무 달랐다. 성숙한 사람이, 지난했던 과정에 대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때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 그 모범 답안을 보는 기분이었다. 
 
 신앙심을 떠나서, 내가 한참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좀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너무 어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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