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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예비군.

by J_One. 2022. 11. 2.

예비군 1년차. 정확하진 않지만 '거의' 전역 1년 되는 날 전후였던 지난주에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게 됐다. 코로나 19로 오랜만에 재개되는 예비군 훈련이면서, 동일한 이유로 올해는 동원 없이 8시간만 진행한다. 

 

10월 말에 진행되는 훈련이라 일교차가 컸다. 가장 큰 고민은 '방상외피를 입을 것이냐?'였는데, 지금 와서의 결론은 사계 전투복만으로도 충분했단 것이었다(점심 먹으니 날씨 따뜻하고 좋기만 하더라). 베레모를 잃어버리고 전투모는 전역할 때 후임에게 물려주고 왔어서 그걸로도 좀 고민을 했는데 (공문에는 전투모를 지참하라고 나왔었다), 미리 다녀온 동기들 말로는 필요 없다길래 굳이 구해서 쓰지 않고 갔다. 훈련장마다 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간 곳은 신경을 쓰질 않았다.

 

전투화를 찾는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창고 어딘가에 박혀 있었는데 많이 해진(..) 상태였다. 나 그래도 군 생활 나름 열심히 했었나 보다. 전투화 안에는 고무링이 그대로 있었다. 양말은 당연히 버렸기에, 목이 긴 양복 양말을 대신 신었다. 오랜만이었지만 전투화 T자 매듭을 묶고, 고무링에 바지 밑단과 함께 정리하는 것은 몸이 기억하더라. 이것이 '머슬 메모리'인가.

 

이 날도 밤을 새우고 말았다. 정말이지 요즘은 철야 없는 날을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바쁨이다. 해서, 본래 차를 타고 부대까지 이동하려고 했으나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말았다.

 

항상 거울 셀카는 어색하다.

 

본래 타인의 시선에 게의치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출근 시간대의 신분당선에 홀로 군복을 입고 서있으니 민망한 기분이 '아주' 살짝 들었다. 각종 패치가 달린 전역복을 입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괜히 하게 됐다. 

 

전역을 하고 처음 입는 군복이니 괜히 설레기도 했다. 긴 머리로 전투복을 입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 넣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입수 보행'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역시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괜한 해방감 같은 것도 사알짝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 번 환승을 한 후 종착역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다. 이때부터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여럿 보였다. 30분 정도 미리 도착해서 수월하게 입소 절차를 밟았다. QR 코드를 스캔해 웹페이지에서 군번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작성해 제출하고, 자가 진단 키트로 코로나-19 음성 반응을 확인한 후 신분증을 맡기고 입소했다.

 

구형 방탄모와 탄띠.. 신교대에서 봤던 것

 

조를 편성 받고 나니 번호에 맞는 사물함에 가서 방탄모와 탄띠를 수령하라고 했다. 조 패치는 부대 마크 자리에 붙였다. 물품을 수령하고 잠깐 시간이 나서 바로 옆에 있던 흡연장으로 갔다. 예비군 두 명이 흡연을 하고 있길래, 나도 따라가서 폈다. 

 

내가 담배를 다 태울 때쯤, 다른 예비군 한 명이 흡연을 하기 위함인지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때 계속 나를 힐끔힐끔 보던 예비군 조교 한 명이 '선배님들, 지금 흡연 통제 시간이니 흡연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급하게 말했다. 내 쪽을 계속 봤던 게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처음부터 알려줬으면 그냥 바로 강당에 들어갔을 텐데, 괜히 미안했다.

 

담뱃불을 끄고 그 이야기를 한 예비군 조교한테 찾아가서 요대 줄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훈련병 시절 이후 해본 적이 없어서 정말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럴 때는 모양 빠지게 끙끙대지 않고 바로 질문하는 게 답이다.

 

해당 조교분은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당연하지만 존댓말로 여쭤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는데. 당연한 존대를 해줬음에도 뭔가 긴장을 푼 것을 보니, 아까 담배 피고 있을 때부터 뭐라 이야기하기 어려웠었나 보다. 현역 입장에서는 예비군을 어떻게 대할지가 꽤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하긴, 한동안 훈련 자체도 없었으니 더 감이 없을 수밖에.

 

오전에는 목전지 전투와 시가지 전투 훈련을 진행했다. 동기, 후임들이 다들 예비군 훈련은 재미없다는데 같은 조원분들이 워낙 적극적이어서 재밌게 임했다. 같은 조에 있었던 분들 중에 전갈부대 흉장을 달고 계신 분이 있어 이것저것 여쭤봤다. 아끼는 동생 하나가 지금 거기서 군생활 중인데 훈련을 정말 많이 받아 고생하더라. 수색대를 나오신 분 한 명은 사람 사귀길 되게 좋아하시는 분 같았는데, 자신의 군생활 썰을 풀면서 분위기 메이킹을 담당했다.

 

생각보다 잘 구현되어 있던 시가지 전투 훈련장

 

장비를 착용하고 야지 전투를 할 때부터 우리는 정말 '열정적'으로 임했다. 비록 탄은 없지만 연막탄도 터뜨리고 나름 실전적인 느낌이 있었다. 우리 팀은 산악 지형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선이었는데, 나를 포함해 4명 정도는 정말 산 아래로 열심히 밀고 내려갔다. 막판에 결국 죽었지만 적 팀 여럿을 잡았고, 결국 우리 팀이 승리했다.

 

크레모아 설치 교육 이후 진행됐던 시가지 전투는 정말 영화 세트장 같은 곳에서 진행됐다. 이전 훈련에서 친해진 분들이랑 또 '열정적'으로 임했는데 우리 구역에 3층 건물에서 각각 2층, 3층에 자리 잡고 적을 저격하자는 것이었다. 총기 반동과 적 사망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얻기 좀 힘들었지만, 다시 조준했을 때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적 팀을 보며 대충 판별이 가능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승리를 하고 기뻐했으나, 올해 예비군에는 승리 메리트가 그닥 없었다(...)

 

사격이 이 모양인 것은 다섯발 속사로 당겨서 그렇습니다..

 

점심은 짬밥이 아니라 외부 업체 도시락이었다. 내가 애정 하는 돈가스도 포함되어 있어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이후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떠서 조원분 중 친한 세 분과 다음 훈련 장소인 사격장 앞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이때쯤부터는 예비군 2,3년차 인원들이 조기 퇴소를 시작했다. 원격 훈련 여부와 헌혈 횟수에 따라 훈련 시간을 차감해줬는데 예비군 1년차인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결국 친했던 분들 중 단 한 분만 나랑 끝까지 남았다.

 

도트 사이트가 부착된 K2C1으로 모의 사격을 진행한 후 M16A1으로 실탄 다섯 발 사격을 진행했다. 따로 영점을 맞추지도 않았기에 현역이었을 때 '잔탄 소비' 목적을 제외하고는 할 수 없었던 속사를 당겼다. 방아쇠 담력이 K2에 비해 훨씬 가벼운 느낌이라 시원시원하게 잘 나갔다. 그 결과 위 표적지의 총알 자국처럼 탄착군이라고는 없는 표적지를 받았지만.. 그래도 속사 한 것치고는 꽤 잘 들어간 것 같다.

 

M16A1이 K 시리즈와 다른 것 중 하나가 노리쇠가 측면이 아닌 가늠자 쪽에 있다는 것이다. 예비군 사격이야 엎드려쏴 자세에서 쏜 것이니 무리가 없지만, 만약에 기동 사격이나 전투 사격 중에 기능 고장 처치 혹은 재장전을 할 경우에는 조준 상태 유지를 못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제대로 견착 한 상태에서는 노리쇠를 후퇴시킬 수 없으니 말이다.

 

퇴소 후 커피

 

본래 오후 6시에 퇴소하는 절차였지만, 우리 조는 2시간 20분 일찍이었던 오후 3시 40분쯤에 조기 퇴소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함께 다녔던 조원 한 분과 인스타 맞팔을 맺고 헤어졌다. 전날의 철야 작업과 의도치 않게 열심히 받은 훈련 때문에 몸이 상당히 피곤했고,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퇴근 시간보다 한참 일찍인 시간대로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은 여유로웠다. 동네에 도착해서 커피 하나를 샀는데, 이 날 처음 '꿀아메리카노'라는 제품을 맛봤다. 단 아메리카노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편이었지만, 꿀은 첫맛이 달고 끝 맛이 쌉쌀한 면이 있어서 은근히 잘 어울렸다.

 

저녁을 먹은 후 웨이트나 러닝 같이 무거운 운동을 피해야겠다 싶어 푸시업만 가볍게 하려는데 생각보다 손목이 많이 아팠다. 피로한 상태에서 훈련을 꽤나 무리했었나 보다.

 

모쪼록 그렇게 첫 예비군 훈련이 끝났다. 사람을 잘 만나서 즐겁게 잘 받고 조기 퇴소로 마무리해 만족스러웠다. 이게 초심자의 행운일지, 내년에도 이런 행운이 따라 줄 것인지. 내년 이맘때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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