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6 2024.03.17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28K 지점, 군자교를 건너는 구간. 주로 우측에 난 인도로 노부부가 걸어오시는 것을 멀리서 봤고 직감적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고 느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할아버지가 주로로 가까이 오시더니 ‘석지원 화이팅’. 이름 한 자 한 자에 힘을 주어, 조금 느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응원해 주셨다. 갑자기 기운이 솟아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지르듯이 하지만 또박또박 답했었다. 군자교 오르기 직전부터 다리가 잠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일찍이었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년 대회에선 32K 지점에서 햄스트링 부상이 왔었고, 최악의 마지막 10K를 경험했다. 심박은 남아 도는데 다리는 착지할 때마다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 2025. 3. 5. 왜 뛰는걸까? 지난주 토요일, 2023 마지막 대회가 끝났다. 군 복무 시절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스파르탄 레이스. 그것도 가장 길고 힘들다는 21K 비스트 종목에 참가해 무사히 완주하고 왔다. 본래 우리 팀원은 4명이었다. 그런데 팀원 중 한 명이 훈련 중 무릎 부상으로 빠지고, 다른 한 명은 대회가 있는 주 월요일로 잡히며 운동이 불가해졌다. 결국 D와 둘이 다녀왔고, 재밌게 즐겼다. 마라톤, 트레일 러닝인 산악 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경험이 있었지만 스파르탄 레이스는 확실히 또 다른 종류의 레이스였다. 기본적으로는 해변과 산악 지형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체력을 빼고, 전완을 털어 버리는 장애물들이 함께한다. 또 해변에서 트레일 러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발이 쑥쑥 빠지는 해수욕장.. 2023. 10. 29. 제삼자의 관조 '디커플링'. 요즘 뉴스에서 세계 경제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직역하면 '탈동조화', 성의없는 해석으로는 주변의 흐름으로부터 독립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한번 성의없이 바꿔말하면, '제삼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린 것이고, 그 거짓말에 속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 사람에게 들었던 조언은 그런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대하지 마라, 그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다'. 무언가 '파악'하기 위한 대화의 기본 전제는 상대가 내게 100% 진실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의 발화는 그에게 유리하게 보이는 사실을 부분적으로 열거하거나, 심하면 검증하기 귀찮은 거짓을 섞는다. 그것을 짚.. 2023. 6. 27. ‘지하철2호선성수역‘ 띄어쓰기 없이 각인된 정류장 표지판 그 밑에 전광판은 ’대기‘를 밝힌 채 점멸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듯 걑은 글자를 성실히 밝히고 있었다 S가 있는 병원은 지난가을, 이곳에서 술을 먹고 도저히 귀가할 자신이 없어 묵었던 호텔 옆이었다 우리는 그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운전자를 탓하면 비타민 음료를 들이켰고, 맑은 밤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코로나로 병원에서 정식 면회는 불가능해 우리는 대로 옆, 흡연구역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어느덧 이곳 지리를 꾀게 된 나는, 모텔촌 뒤편으로 낮은,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주택가를 지나 취기를 나누는 대학 동기 무리들과 짝짓기 장소를 정하는 연인들 사이를 지나쳤다 골목에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가 부유하고 이따금씩 종횡으로 난 번화가의 길이 등장한다 월요일 밤, 취기가 진동하.. 2023. 5. 15.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