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7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28K 지점, 군자교를 건너는 구간. 주로 우측에 난 인도로 노부부가 걸어오시는 것을 멀리서 봤고 직감적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고 느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할아버지가 주로로 가까이 오시더니 ‘석지원 화이팅’. 이름 한 자 한 자에 힘을 주어, 조금 느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응원해 주셨다. 갑자기 기운이 솟아서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지르듯이 하지만 또박또박 답했었다.
군자교 오르기 직전부터 다리가 잠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일찍이었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전년 대회에선 32K 지점에서 햄스트링 부상이 왔었고, 최악의 마지막 10K를 경험했다. 심박은 남아 도는데 다리는 착지할 때마다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년 대회의 악몽이 떠오르자 바로 멘탈이 흔들렸다. 하프 지점을 통과하면서 이미 Sub-3 페이스 그룹은 제친 상황이었지만 한 번 퍼지면 얼마나 밀릴지 장담 못하는 게 마라톤이다. 복잡해서는 도움될 게 없는 머리속으로 별의 별 생각이 틈입해 올 때쯤 할아버지의 응원이 들려왔고, 그동안 준비한 대로, 훈련한 대로 밀어보자 생각하며 멘탈을 잡았다.
통한의 32K를 지나자마자 다시 페이스를 당겼다. 조금씩 몸에 부하가 걸리는 게 느껴졌지만 페이스를 낮출 생각은 없었다. 지금부터 이 악물고 페이스를 당기면 예상했던 것 이상의 기록이 확정이었고, 몸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5K쯤 남았을 때부터 심박을 Zone 5 영역으로 넘겼다. 항상 그렇게 훈련했다. LSD든, TT든 마지막 5K는 심박을 터뜨리며 대회 페이스를 초과해 스퍼트를 냈다. 심박은 금세 무산소 역치까지 올라왔고 20여분만 더 달리면 레이스는 끝난다는 생각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 구간부터는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시야는 흐려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주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름 불러주는 소리에 간신히 멘탈 잡으며, 자세가 다 어그러져도 어떻게든 페이스만 유지시키며 힘을 쥐어짰던 것 같다.
대회가 끝나고 거듭 복기하고 여러 번 반추해도 마지막 10K 운영이 현명했는 지에 대해선 자신 있게 답을 못 내리고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더 좋은 전략이 있었어도 그때의 나는 그냥 그렇게 뛰고 싶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대회는 내게 ‘설욕전’으로써 의미가 컸다. 일부러 전년 대회랑 동일한 착장-옷 사는 데 돈을 엄청 썼음에도-을 했고, 스타트 라인에서도 마지막 10K만 원 없이 달리고 오자는 생각뿐이었다.
또 하나 확신하는 것은 이 날 군자교에서 그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절대 Sub-3를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몸에 데미지가 쌓이는 것을 느끼자마자 피지컬적인 것 이상으로 멘탈적인 부하가 걸렸는데, 멘탈 나가기 시작한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 분의 응원을 듣고 다시 집중할 수가 있었다.
마라톤은 멘탈 게임이고 개인 운동이다. 긴 레이스 동안 끝없이 스스로 다독이고 또 밀어붙여야 원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가끔은 당위가 아닌 선의가 찾아와 마라톤이 진정 개인 운동인지 햇갈리게 만든다. 놀랍게도 나는 매 대회마다 이 반가운 사건들을 마주쳤다.
6년 전 동마에서 첫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는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경구에 혹한 것이 계기였다. 6년이 지나 그땐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기록을 세우고,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에 입회 했음에도 저 경구의 의미를 또 다른, 하나의 문장으로 치환해 정의할 수가 없다.
물론 지난 6년 동안 배운 건 너무 많다. 그런데 하나 같이 뻔해서 활자로 옮기기 민망한 것들 뿐이다. 대신 몸이 기억한다. 내가 뛰었던 모든 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들에 그 뻔한 문장들이 빛을 발한다.